[넥스트 모빌리티] 일론 머스크 '하이퍼 루프' 156년 전 뉴욕에 있었다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 2013년, 기존 교통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새로운 이동 수단 하이퍼루프(Hyperloop) 구상을 공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이퍼루프는 진공 상태에 가까운 튜브 안에서 마찰과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차량이 시속 1200km에 달하는 속도로 이동할 수 있어 항공기를 대체할 차세대 교통수단으로 주목받았다.
하이퍼루프는 전통적인 엔진 대신 리니어 모터(Linear Motor)를 이용해 튜브 속 차량인 포드(Pod)를 가속 또는 감속시키고 자기부상(Maglev) 기술을 통해 지면과 마찰 없이 튜브 안을 떠서 이동한다. 이로 인해 진동과 소음이 거의 없는 것도 하이퍼루프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하지만 수십에서 수백 km에 달하는 튜브 내부를 저압 상태로 유지하고, 초정밀 수평 구조와 진동을 흡수할 수 있는 설계를 적용하려면 막대한 에너지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머스크 본인도 실제 상용화에는 한 발 물러선 상태다.
놀랍게도 이와 유사한 개념이 156년 전, 1869년 미국 뉴욕에서 현실화한 적이 있다. 바로 비치 뉴매틱 트랜짓(Beach Pneumatic Transit)이다. 이 시스템은 발명가 앨프레드 엘리 비치(Alfred Ely Beach)가 고안한 것으로, 맨해튼 브로드웨이 지하에 길이 약 95m의 시험 터널을 뚫고 실제 운행을 시도한 세계 최초의 공기압 기반 지하 열차다.
작동 방식은 대형 송풍기(blower)를 사용해 압축 공기로 차량을 밀거나 당기는 구조로 마치 거대한 주사기처럼 작동했다. 지금 보면 원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내연기관 자동차와 증기 기관차가 일반화했던 바람으로 가는 열차는 당시 획기적인 발상이자 시도였다.
비치는 쉴드 터널링(Shield Tunneling)이라는 친환경 굴착 기술을 적용해 조용하고 먼지 없는 터널을 만들었고, 차량 내부는 고급 마감재로 꾸며져 25명까지 탑승 가능한 고급 대중교통 수단을 구상하고 실천에 옮겼고 수 많은 뉴욕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공적인 시범 운행까지 마쳤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기술적인 한계보다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막혀 확장되지 못했다. 당시 뉴욕의 지상 철도 운영을 독점하던 민간 철도 회사들이 수익 감소를 우려해 정치권에 로비를 벌였고 뉴욕 정계를 장악하고 있던 탐머니 홀(Tammany Hall) 역시 이를 견제했다.
그 결과, 비치의 프로젝트는 기괴한 발명이나 장난감 같은 쇼로 폄훼됐고 여론과 정치권의 반대 속에 민간 자금만으로는 지속이 어려워 결국 폐쇄되고 말았다. 이후 존재조차 잊혀졌던 터널은 1912년 브로드웨이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됐고 현재는 일부 차량과 구조물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하이퍼루프보다 150년 앞선 시기에 진공·공기력 기반 교통수단의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준다. 현재도 스페이스X, 버진 하이퍼루프, 하이퍼루프TT 등 여러 기업들이 상용화를 추진 중이지만, 비용과 규제, 기술 문제로 상용화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6년 전 처음 시도됐던 하이퍼루프는 도시간 초고속 이동, 저탄소 교통 인프라, 항공 대체 교통수단이라는 가능성을 품은 채, 미래 모빌리티의 한 축으로 계속해서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3년간 총사업비 127억 원을 투입, 시속 1200km의 '철로 위 비행기'로 불리는 K-하이퍼튜브 개발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