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유럽 최대, 벤츠 '진델핑겐 차량안전기술센터' 충돌 테스트 연간 900건
[진델핑겐(독일)=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독일도 1970년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최대 2만여 명에 달했던 적이 있다. 인구, 자동차 등록 대수, 도로 인프라 등 비교할 것이 많지만 우리나라가 1만 3000여 명으로 고점을 찍었던 1991년보다 많았다.
독일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줄기 시작한 건 위험 구간의 최고 제한 속도를 시속 100km로 낮추고(1972년), 안전띠 의무화(1974년) 제도를 도입하면서다. 그리고 메르세데스 벤츠가 선제적으로 적용한 운전자 에어백(1980년)과 동승자 에어백(1988년)이 다른 브랜드로 확산하면서 1990년대 초반부터 1만 명대 아래로 감소했다.
벤츠는 가장 적극적인 안전 장비 및 시스템을 도입해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는데 기여했다. 사이드 에어백, 차체 자세제어시스템(ESC), 액티브 보닛, 리어 에어백 등 안전장치를 가장 먼저 탑재한 곳이 벤츠다.
덕분에 독일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20년대 이후 3000명 아래로 감소했다. 벤츠 차량 안전의 중심에는 진델핑겐의 차량 안전 기술 센터(The Technology Centre for Vehicle Safety in Sindelfingen.TFS)가 있다. 최근 이곳 시설을 둘러보고 대형 전기 세단 EQS의 실제 차 충돌 테스트 현장을 지켜봤다.
안전의 아버지 '벨라 바레니'의 유산 '차량 안전 기술 센터'
자동차 구조에서 탑승자를 보호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크럼플 존(Crumple Zone)'이다. 크럼플 존은 차량의 전면과 후면 그리고 측면에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와 공간을 말한다.
자동차를 무조건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겼던 때 크럼플 존의 개념을 만든 인물은 1939년 벤츠가 영입한 벨라 바레니(Bla Barnyi)다. ‘생명을 구하는 사람(Lifesaver)’, 벤츠 안전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바레니의 유산을 이어 받은 곳이 진델핑겐의 차량 안전 기술 센터다.
율리아 힌너스(Julia Hinners) 충돌 안전 엔지니어는 "벤츠는 65년 전부터 충돌 테스트를 진행했다"라며 "이곳에서는 실제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사고를 재현해 가장 안전한 벤츠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라고 했다.
또한, "실제 차의 충돌 테스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실제 도로에서 발생한 벤츠 차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제를 찾아내고 반영하는 일도 하고 있다"라며 "우리의 혁신적인 안전 기술이 실제 사고에서 어떻게 결과를 바꿨는지도 조사하고 평가한다"라고 했다.
센터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첨단 안전장치에 대한 연구도 진행한다. 자율주행차는 물론 지금 자동차에 탑재되는 모든 안전운전 보조 시스템 등을 통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고를 막고 충돌이 임박했을 때, 충돌 직후 등 찰나의 순간에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율리아 힌너스 엔지니어는 "유로 NCAP 등 각 지역의 안전 규제와 기준보다 더 까다롭고 엄격한 벤츠의 내부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최종 단계"라며 "미국과 유럽 신차 충돌 테스트보다 상위에 있는 내부 평가 기준을 통과해야만 안전한 차가 된다"라고 했다.
유럽 최대 규모의 충돌 테스트 시설 "어떤 유형의 충돌도 재현"
벤츠의 진델핑겐 차량 안전 기술 센터(TFS)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최첨단 장비를 갖춘 시설이다. 273mx172mx23m 크기로 총면적이 5만 5000㎡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TFS에서 가장 긴 트랙의 길이는 200m가 넘는다. 최고 시속 120km의 속력과 다양한 형태의 사고 유형에 맞춰 변형이 가능한 총 3개의 트랙은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완벽한 평탄화 작업을 통해 완성됐다. 100m당 허용 오차범위는 5mm 불과하다.
또한, 차량의 완벽한 외관을 디지털 3D 이미지로 만들어내기 위해 센서가 차량의 흠 없는 금속판에 부드럽게 접촉할 때 그 어떤 진동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지면 아래 지하 18m까지 뻗어 있는 약 500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설치됐다.
TFS에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잡아낼 수 없는 그 이상의 기능을 제공한다. 차량을 어떤 각도로든 충돌시킬 수 있고 심지어 자동 운전 중에 발생하는 충돌까지 재현할 수 있다. 다양한 겹침 각도의 충돌이나 두 대의 차량이 이동 중인 상태에서의 측면 충돌 테스트도 가능하다.
마르셀 브로드백(Marcel Brodbeck) 전기차 충돌시험 엔지니어는 고전압 배터리에 대한 테스트도 매우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전기차 고전압 시스템 관련 안전을 위한 다양한 컨셉의 테스트가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라며 "충돌 직후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고 전기차의 구조적 측면, 그리고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안전 장치까지 다양한 테스트를 하고 있다"라고 했다.
TFS에서는 연간 900대의 충돌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율리아 힌너스 엔지니어는 "신차 한 대가 나올 때까지 150회 이상 충돌 테스트를 진행한다"라며 "매일 평균 3회 이상의 충돌 테스트를 통해 내연기관차와 전기차가 동등한 안전 성능을 갖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EQS, 시속 64km로 오프셋 충돌...승객석 변형 거의 없어
이날 TFS에서는 벤츠의 대형 전기 세단 EQS의 실제 차 충돌 테스트 현장도 전격 공개했다. 약 70m의 거리를 최고 시속 64km로 달려 오프셋(50%)으로 베리어와 충격한 EQS는 전면 크럼풀 존이 충격을 흡수한 덕분에 보닛을 제외하면 비교적 온전한 상태를 유지했다.
율리아 힌너스 충돌 안전 엔지니어는 "전기차 고전압 배터리는 여러 충돌 상황을 고려해 변형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탑재한다"라며 "작년 10월 차대차 테스트에서도 실제 증명을 한 바 있다"라고 했다.
벤츠는 지난해 10월, 전기차 라인 가운데 가장 큰 EQS SUV와 가장 작은 사이즈의 EQA '차대차' 충돌 테스트를 진행해 주목을 받았다. 이날 EQS도 당시와 다르지 않게 승객석의 변형이 보이지 않았고 모든 문은 정상적으로 열리고 닫혔다.
현장 관계자는 "충돌과 함께 고전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며 화재 위험을 차단한다"라며 "벤츠 전기차는 사고 발생 가능성을 예측해 사고 전·중·후 각기 다른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여러 단계의 고전압 보호 시스템으로 충돌 직후 완벽하게 모든 전원을 차단한다"라고 했다.